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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아침 10시에 일어나자, 내 몸은 무지 부스스 했다. 열도 난다. 머리도 무지 아프다. 쪼개질듯 아프다. 어제 술도 안쳐먹었는데 무슨일이지....하고 고민하다가, 이불 안에서 나오자 엄습해오는 오한. 그렇다. 몸살이다. 최근 2주간 많이자도 4~5시간 잠자고 레폿치고 밤샘을 하면서도, 강의 꼬박 들었던 결과 한계가 다가온 것이다. 어제가 종강일이었기에, 종강과 동시에 몸이 무너져 내린 듯 했다. 일종의 크래쉬 (Crash) 랄까, 번아웃이랄까. 레폿과 시험으로 하얗게 태워버린 내몸은, 덜컥 몸살이 나버린것이다. 일단 타이레놀먹고 푸욱 자야지. 타이레놀 2알을 삼키고, 잠자리에 들자 배에서 반응이 온다. -꼬르륵. 식신인 나는, 아픈 와중에도 배가 고프고 식욕이 있다. 아플수록 먹어야한다. 그래야 빨리 나으니까. 특히 몸살일때는 치킨 수프가 와따인데..... 사러 나가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고 이불을 나가 일어서는 순간 엄습하는 추위, 그리고 무기력으로 털썩 주저 앉았다. 절대 이 상태로는 뭐 사러 나가서 사올수가 없다. 거울을 보니 몰골도 인간의 몰골이 아니다. 수가 없다. 원군을 부르자. 전화를 걸어서, 친구들에게 사와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다. -미안, 나 스터디 그룹중이라.... 뭐, 시험기간이니까. -전화기가 꺼져있사오니.... 시험중인가보다. -미안하다. 일리단 공대중이다. 더러운 와우폐인x끼.... 기말 기간에도 공대질이냐. 다들 뭔가 하느라 바쁘다. 그리고 딱 한명이 남았다. 수프를 사와줄 정도로 친밀한 아이가. ....친밀인지 증오인지 구분이 안간다. 마리앤. 그녀를 지칭하는 별명은 한가지 공통이 있다. 블러디 매리, 퀸 매리, 더 퀸. 그렇다, 여왕이라는 것이 붙는다. 남자 패기를 밥먹듯 하고, 채찍을 즐겨 사용하며, 가죽옷 광인 영국인 그녀. 나이스 바디를 하고 있지만, 복근의 왕짜와 아마추어 여자 복서인건 무시 못한다. 그녀의 갸날픈 이두와 삼두는 당신의 뇌를 송두리쨰 흔들어 놓고 정신까지 빼앗아 갈것이다. 굶어 죽느냐, 그녀의 시달림에 더 병이 악화되어 죽느냐. "먹기위해 산다" 라는 모토를 가진 나는, 전자를 선택했다. -여보세요? -매리앤, 나야. -어머, 내 노예☆. 무슨 일이냐? - [.....] 내가 아파서 그런데, 수프 같은거 좀 사다줘. -알았어. 그럼 이따봐. -저 저기? 여 여보세요? -뚜-뚜- ................ 누가 말했나. 댓가를 물어보지 않고 부탁을 들어주는게 더 무섭다고. 그것도 간결하게, 단번에 오케이하는게. 아마 나를 진짜 골병들게 만들 셈일거야. -똑똑 -들어오셔... 마중 나갈 기력도 없다. 문은 아침에 잠깐 일어났을떄 열어놨다. 이불 뒤집어쓰고 상체만 일으켜서 마리앤을 맞이 했다. -후후☆ 관대로운 이몸이 오셨느니라. 짠. 오늘은 가죽바지를 입지 않고, 평범하게 입었다. 아마 세탁소로 가죽바지를 보냈나보다. 그런 날엔 평범하게 입는다. 그렇다고 위험한 애가 아니라는건 아니다. 호랑이는 줄무늬를 지워도 호랑이인 법이다. 줄무늬 지웠다고 개가 되는게 아니다. -수프 챙겨왔다. -아 고맙.... 내가 받을려는 순간, 그녀는 수프를 낚아 챈다. -병자가 움직여서 쓰나? 가만히 있어. 먹여줄게. ...저기요? 나 23살이거든요? 미국 나이로도 22살이거든요? 수프따윈 혼자 먹을수 있다고! 그것보다..... 니가 그런 행동을 한다는게 무서워!!!!! 설마 먹이는 척 숟가락을 목구녕에 쑤셔넣는다던가 그런거 아냐? 독이라도 탔냐? 도대체 무슨 꿍꿍이냐? 의외로 그녀는 꼼꼼했다. 크래커를 잘게 부셔서 수프에 넣고, 잘 섞은뒤, 조금 퍼다가 맛을 봐서, 스프가 뜨거운지 아닌지 확인한다. 그리고 한스푼 듬뿍 퍼다가 나에게 먹인다. -자, 아~ㅇ♥ 그녀 답지 않다. 절대 이건 마리앤이 아니다! 넌 누구냐? 마귀가 쓰인건가? 엑소시스트 불러? 복잡한 심정을 한 채로 한입 먹는다. 다행이 스푼을 목구멍에 밀어 넣는 다거나 수프가 너무 뜨겁다거나 그렇지 않다. 그녀의 이런 기이한 배려가 날 체하게 만들거 같다. 스프를 다 떠먹여지기는 싫어서 다섯스푼쯤 그녀가 먹인 후, 내가 뺏어다가 내가 먹었다. 그녀는 그사이 내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서 깎는다. 깍는 내내 저 칼이 나를 향해 날아 올까 무서웠다. 이미지상, 사과 못깎을줄 알았는데, 사과를 정말 이쁘게 잘 깎았다. 사과를 먹으면서 그녀에게 물어봤다. -나한테 이리 잘해주는 이유가 뭐여? -엥? -평소의 너를 봐선 이러지 않을거 같은데. 그녀는 픽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타지에 와서 혼자 생활할때, 아프면 서럽지. 그건 나도 잘 알아. ...아 맞다. 그녀나, 나나, 미국에선 혼자다. 그래서 아프면 무지 서럽다. -그리고 너도 내가 아플때 챙겨준 적 있잖아? 하기사, 스프랑 먹고싶단 과일 사달라고 했지. ....그게 학교 마켓에선 안파는 과일이라 걸어서 30분거리인 마켓에 가야 했지만. -난 받은 것은 잊지 않아. 그리고 네 처치를 알지. 충분히 너에게 이런 배려를 해줄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리고 부분이 언제나 무서운 법이다. -난 자비심이 많으니라, 캬하하하하하! 픽 웃어버렸다. -크세르크세스냐? 300의..... 퍽! 주먹이 정수리 뒤에 꽂힌다. -그게 여왕님에게 할말이냐? -여왕님이라는 인간이 병자를 패냐? 그렇게 아웅다웅 하면서, 나의 몸살은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한다. 배려 하나에, 병이 사라지기도 한다. 잔병의 최고로 잘듣는 약은, 배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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